[영문 동화 출간 여정 4] 영어로 쓰며 달라진 장면들

영문 독자를 떠올리며, 문장이 달라진 순간들

영어로 옮기는 작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문장을 바라보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정확한 뜻을 담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작업이 깊어질수록, 그보다 더 자주 떠올리게 된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 문장이 처음 읽히는 순간, 어떤 뉘앙스로 닿을까.

같은 이야기, 다른 확신

한국어 원문에서는 문장이 조금 길어져도 괜찮았다. 여백을 따라 감정이 천천히 스며드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로 옮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그 문장이 영어권 독자에게 어떤 온도로 읽힐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같은 의미라도 영어에서는 전혀 다른 뉘앙스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이 장면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지, 아니면 설명처럼 느껴지는지. 감정이 먼저 닿는지, 말이 앞서 버리는지. 그 판단을 혼자서 내리기에는 늘 불안이 남았다.

그래서 이 번역 과정에서는 AI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여러 버전의 문장을 만들어보고, 그중 어떤 문장이 가장 자연스럽게 읽히는지 반복해서 확인했다.

뜻이 맞는지 여부뿐 아니라, 원어민이 읽었을 때 어떤 뉘앙스로 느껴질지를 함께 번역해 보며 비교했다. 의미와 감정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부분이었다.

AI는 정답을 주기보다는, 내가 확신하지 못하던 지점을 드러내 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읽는 아이, 읽어주는 어른

타깃을 5–8세로 설정하고 나서는 번역의 기준이 더 분명해졌다. 이 동화를 실제로 읽는 이는 아이이지만, 읽어주는 이는 높은 확률로 부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문장과, 부모가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기 좋은 문장 사이의 균형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아이에게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고, 어른에게는 말을 건네기 쉬운 여백이 남는 문장.

이번 번역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문장을 줄이고, 다시 늘리고, 또 한 번 더 읽어보는 과정을 반복한 기록에 가깝다.

A child holding an acacia leaf during a quiet traditional Korean leaf fortune game, leaving space for imagination rather than explanation


like를 선택한 이유

끝까지 고민을 붙잡고 있었던 장면은 아까시아 잎을 따며 점을 치는 부분이었다. 이야기 안에서는 아주 짧게 스쳐 가지만, 마지막까지 판단을 미루게 만든 문장이었다.

잎을 하나씩 떼며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그 감정.

영어로 옮기면 like가 맞는지, love가 맞는지.

love라는 단어가 훨씬 범용적이고, 더 넓은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한국의 아까시아 잎 점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동화 속에서 미리가 실제로 내뱉는 한국어의 감정을 가능한 한 그대로 옮기는 쪽이 더 어울린다고 느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확대하는 일이 아니라, 한국어로 말해졌던 그 순간의 결을 지나치게 바꾸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like를 선택했다.

이 감정은 사랑으로 확장되기 이전의 단계라기보다는, 친한 친구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마음을 헤아려보는 상태에 가깝다. 한국적인 놀이 속에서, 아이가 혼자 마음속으로 가늠해보는 정도의 감정.

본문에서는 그 감정을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적인 놀이를 처음 접하는 글로벌 독자를 위해, 이야기의 흐름을 멈추지 않는 선에서 부록에 아까시아 잎 점의 간단한 게임 방법을 덧붙였다.

문장을 고친다는 감각의 변화

이제는 이 작업을 번역이라고 부르기보다, 읽히는 장면을 조정하는 일에 가깝다고 느낀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언어로 옮기면서, 이야기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처음 닿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영문 독자를 상상하는 일은 새로운 독자를 설정하는 작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이야기를 처음 쓰던 순간의 감각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몇몇 문장은 달라졌고, 몇몇 문장은 그대로 남았다.


이 기록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아래에 남겨둔 이전 여정들을 함께 읽어도 좋겠다. 이 영문 동화 출간 여정은, 그 시간들 위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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